피규어 수집은 중독일까?

 코로나 이후 취미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 하나가 피규어 시장이다.

예전에도 키덜트 문화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취미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피규어를 접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여기에 SNS의 영향도 컸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통해 다른 사람의 수집 사진이나 전시장을 보면서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많다.

애니메이션 시장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이 대표적이었다면, 지금은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체인소맨 같은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세대가 피규어 시장으로 유입됐다.

기존 키덜트 세대에 MZ세대까지 더해지면서 시장 규모도 눈에 띄게 커졌다. 예전에는 피규어 전문 매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피규어샵은 물론 가챠샵과 쿠지샵까지 미친듯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기존 수집가들만 즐기던 취미가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피규어나 굿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피규어 하나를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장난감 하나에 몇만 원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어도 며칠씩 고민하고, 가격을 비교하고, 정말 살 가치가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를 사고, 둘을 사고, 택배를 받아 개봉하는 즐거움을 경험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는 비싸다고 느꼈던 금액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구매하는 금액의 기준도 점점 높아진다.

신기한 건 사고 나면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배송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른 피규어를 찾아보고, 택배를 받아 개봉한 뒤에도 또 다른 제품이 눈에 들어온다. 하나를 채우면 또 다른 빈자리가 보이고, 컬렉션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도 점점 커진다.

결국 피규어를 사는 즐거움보다 '다음에는 뭘 살까'를 찾아다니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피규어 수집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수집이 취미가 아니라 구매가 취미가 된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피규어뿐 아니라 '수집'이라는 취미는 생각보다 돈을 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게임은 결제를 하면 직접 플레이를 하고, 옷은 입고 외출을 한다. 운동 장비를 사면 사용해보고, 레고를 사면 조립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재미다.

하지만 피규어는 조금 다르다. 구매하고, 배송을 기다리고, 개봉한 뒤 진열하면 그다음은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어떤 사람들은 개봉도 하지 않고 박스는 쌓여가는 사람이 많을 것. 물론 그 자체가 피규어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다른 취미와 비교하면 즐길 수 있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짧다.

그래서 수집 취미는 자연스럽게 '구매'에 가장 큰 비중이 쏠리게 된다. 새로운 제품을 찾고, 예약하고, 배송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즐거움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막상 갖고 싶었던 피규어를 손에 넣어도 만족감은 잠시뿐이다. 진열을 마치고 나면 어느새 또 다른 제품을 검색하고 있다. 사고 또 사도 계속 목마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사고 싶은 제품이 너무 많다. 애니 하나만 좋아해도 수십 종의 피규어가 있고, 다른 작품까지 관심이 생기면 사고 싶은 목록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몇십만 원, 많게는 몇백만 원을 순식간에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 이 시점에서 한 번쯤은 큰 현타를 맞는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쓴 돈보다 돌아오는 만족감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구매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천천히 구매하는 것이다.

입문한 사람들은 아직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남들이 올린 사진이 멋있어 보이고, 유명하다는 제품이 좋아 보인다. 아직 기준이 없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취향이 내 취향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돈을 쓰기보다 많이 구경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피규어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와 브랜드, 수집 방식이 있다. 하나의 작품만 모으는 사람도 있고, 작은 사이즈만 모으는 사람도 있고, 스케일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도 있다.

계속 구경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부터는 남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남이 모으는 것을 따라갈 필요도 없다. 결국 오래 즐기는 사람들은 남의 컬렉션이 아니라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든다.

피규어 수집에는 정답이 없다. 남들이 인정하는 컬렉션보다 내가 만족하는 컬렉션이 더 중요하다.

조금 늦게 모아도 괜찮다. 한 번에 많이 살 필요도 없다. 천천히 하나씩 늘어가는 내 컬렉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건강한 수집이라고 생각한다.

구매하는 즐거움에만 빠지기보다, 내가 가진 피규어를 오래 바라보고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매 중독이 아닌, 내가 가진 피규어에 중독되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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